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86년 한국시리즈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* 우승 후에 해태 [[김응용]] 감독은 5차전을 빼고는 나머지 3승은 우리가 잘 해서 이긴 것이 아니기에 다음 해에는 더 전력을 보강해서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고, [[1987년 한국시리즈|실제로 그렇게 되었다]]. * 김정수는 이 때의 활약을 시작으로 한국시리즈에서만 7승을 거두며, 한국시리즈 최다승 투수가 되었다. 그래서 별명도 가을까치. * 반대로 김시진은 1984년에 이어 또 다시 한국시리즈에서의 악연을 풀지 못했고, 그 결과 한국시리즈 7패라는 기록을 남기고 만다. * 3차전을 삼성이 패하면서 분노한 대구 시민들이 [[해태 버스 방화 사건]]을 일으키고 난 뒤부터 삼성은 '''한국시리즈 12연패(敗)'''라는 충격적인 기록을 작성하고 만다. 즉, 이 해 한국시리즈 3~5차전 내리 3연패를 하고, 87년과 90년에는 모두 '''4전 전패'''를 기록하는 바람에 그런 불명예 기록이 이어진 것이다. 이런 경악스런 연패 기록은 '''7년'''이 지난 [[1993년 한국시리즈]] 2차전에서야 겨우 끊게 된다. 이에 비견될 기록으로는 2020년 한국시리즈 4차전부터 2021년 한국시리즈 전 경기를 패한 두산 베어스의 한국시리즈 7연패(敗)[* 현재 진행중이다. 만약 두산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패배가 이어지면 이 기록은 계속해서 갱신되는 것.]나 1989년 KS 2차전~1992년 KS 2차전까지 한국시리즈 10연패(敗)를 기록한 빙그레-한화 이글스 정도. * 당시 방화사건이 터지면서 해태 매니저가 김응용 감독에 "감독님 불이 났습니다, 불이!"라며 울고불고 울상을 짓자 김응용은 "이 녀석아 불난집에 복 든다는 말 몰라?" 라며 대인배같이 받아쳤다고. 그리고 이 말은 사실이 되어 결국 해태가 승리했다. [[전설의 타이거즈]]에서 [[송유석]]이 술회하기를 본인의 월급 20만원을 찾아서 구단 버스 밑에 넣어놨는데 버스가 불타면서 돈도 같이 불타버렸다고 한다. * 이때 1차전 관중은 12,822명이었고, KBO 측에서는 극적으로 홈팀이 승리했기에 2차전은 그 이상의 관중이 들어올것이라 예상했지만 2차전 관중은 8,398명으로 집계되었고 실제 입장은 6천명 정도여서 내야는 찼지만 외야는 휑했다고 한다. 이렇게 된 이유는 당시는 예매를 구장에서도 했지만 추가로 서점이나 레코드 가게 등에 일정 티켓을 배부하여 경기 전전날까지 팔게 한 다음에 티켓 판매금과 남은 티켓을 회수하는 시스템이었는데, 예매처마다 암표상들이 돌아다니면서 티켓을 빼돌렸던 것. 그러니 KBO는 예매가 매진되었다고 알고 있고 그 소식을 받은 언론들도 예매 전쟁이라고 기사를 연일 실어댔기에 실제로 야구를 보러 와야 할 관중들이 아예 경기장 오는걸 포기해 버린 것이다. 그러자 표가 많이 남아버린 암표상들은 경기운영본부로 쳐들어가서 남은 티켓을 환불해달라고 생떼를 썼다고 한다. 조폭처럼 협박을 해대기도 했다고 하지만 공권력을 동원해서 내쫓아버렸다. * [[재일교포]] 출신으로 3년간 삼성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[[김일융]]의 [[KBO 리그]] 고별무대가 되었다. 그리고 시리즈 직후 [[김영덕]] 감독은 재계약을 포기하며 팀을 떠나 1년의 휴식기를 거쳐 [[빙그레 이글스]]의 2대 감독이 되었는데 거기에서도 [[콩라인|4번의 준우승을 추가하고 말았다.]] * 2021년까지 타이거즈가 자신들의 상징인 호랑이띠인 해에 우승을 차지한 유일한 한국시리즈다. 1998년과 2010년에는 8개 팀 중 5위를 기록하여 포스트시즌 진출조차 실패했고,[* 이 두 번의 전년도인 1997년과 2009년에는 모두 우승했다.] 2022년에는 10개 구단 중 5위로 [[KBO 와일드카드 결정전/2022년|와일드카드 결정전]]에 진출했지만 1경기만에 탈락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